‘괴인’ 감독 “30년지기 목수 친구가 주연…강력한 믿을 구석”

이정홍 감독, 데뷔작서 비전문 배우 박기홍 주인공 낙점

작년 부산영화제 4관왕…박기홍 “부모님, 아직도 영화 출연 몰라”

영화 ‘괴인’ 이정홍 감독(좌)과 배우 박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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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이정홍 감독의 첫 장편 영화 ‘괴인’은 개봉에 앞서 여러 영화제 관객으로부터 “재밌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는 색다른 평을 들은 작품이다.

평범한 30대 남자의 일상을 보는 것뿐인데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와 2시간 16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목수 기홍(박기홍 분)이 동료와 친구, 집주인, 고객, 가족 등 여러 사람과 만나 관계 맺으며 겪는 일을 그린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 등 4개 상을 받았고 이후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대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감독상과 영화평론가상을 받았다. 평단은 “올해의 괴작”, “무엇을 상상하든 예상을 배반”, “비범한 리듬의 세계로 재탄생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괴인’의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주인공 ‘기홍’을 연기한 박기홍이 한 번도 연기해본 적 없는 비전문 배우라는 것이다. 그는 영화 속 설정처럼 목수지만, 삼십년지기인 이 감독을 위해 연기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6일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이 감독과 박기홍을 만나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이 감독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품인데 너무 내 이야기인 게 티가 나는 건 싫었다”면서 “저보다 훨씬 유쾌한 오랜 친구인 기홍이를 연막처럼 활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홍이와 테스트 촬영을 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자유롭게 연기해 큰 어려움이 없겠다는 확신도 들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2년 넘게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박기홍을 설득했다. 박기홍은 처음엔 이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잘못해서 친구의 데뷔작에 손해를 끼칠까 걱정했다”면서도 “5∼6년간 시나리오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적어도 기홍 역은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영화 ‘괴인’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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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은 “부모님도 아직 제가 영화에 출연했다는 걸 모르신다”면서 “특히 아버지는 9시 뉴스만 보는 사람이라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평생 모르실 것”이라며 웃었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박기홍은 다큐멘터리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허세가 있지만 정은 많고, 얄밉지만 따뜻한 구석도 있는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20대 후반 때부터 영화학도인 이 감독을 위해 ‘열정페이’로 단편영화 연출을 도와주기도 했다. 월급은 술과 밥을 얻어먹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괴인’을 촬영하면서 박기홍이 “가장 강력한 믿을 구석”이었다면서 “눈치 보지 않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마음에 들 때까지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찍을 수 있었다”고 했다.

‘괴인’에는 박기홍을 포함해 여러 주·조연, 단역 배우가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기홍과 친구가 되는 집주인 정환 역의 안주민은 이탈리아 정통 피자를 만드는 셰프고, 정환의 아내 현정 역을 맡은 전길은 쌍둥이 자매를 둔 엄마다. 극 중 기홍에게 청년들 흉을 보는 카센터 사장은 실제로도 카센터를 운영한다.

“온갖 수를 다 써서” 비전문 배우를 찾아 나섰다는 이 감독은 3개월간 약 500명의 사람을 만나 출연진을 꾸렸다.

이 감독은 “기홍이가 주연 배우로 확정되면서 전문 배우와 비전문 배우의 균형을 잡게 됐다”면서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비전문 배우가 기성 배우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의 연기를 보여주는 걸 확인하면서 성취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영화 ‘괴인’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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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영화는 신선한 얼굴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실제 같은 이들의 연기 앙상블은 ‘인간관계’라는 이 작품의 주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 감독은 “‘괴인’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건 어렵다”면서도 “나와 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벽, 절대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서 당혹감을 느낀 뒤 시나리오를 쓰게 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로운 사람끼리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낸다면 그 벽에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결국 대화와 솔직함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박기홍은 촬영하는 과정에서도,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도 “새로운 느낌의 영화인 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한 치 앞도 예상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예상을 조금씩 비켜 나가고, 잘나가다 갑자기 ‘삑사리’가 나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도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