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괴물’…소년들 사랑에 가해지는 폭력 그려
“사카모토 각본, 나였다면 절대 못 쓸 플롯…꼭 연출하고 싶었다”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각본을 읽으면서 저는 절대로 쓸 수 없는 플롯(이야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 연출에 꼭 도전하고 싶었어요.”
신작 ‘괴물’로 돌아오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2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 후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각본을 처음 읽었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작은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생 미나토(구로카와 소야 분)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가 겪는 이야기로,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고레에다 감독은 데뷔작 ‘환상의 빛'(1995)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신이 직접 쓴 각본을 바탕으로 영화를 연출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카모토 각본가로부터 ‘괴물’ 시나리오를 건네받고 2018년 말부터 3년간 함께 각색 작업을 거친 후 영화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앞서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처음에 각본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는 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어느새 누가 나쁜 사람인지 ‘괴물 찾기’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극 후반부로 가면 여기저기 돌리던 (가해자를 찾는) 화살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며 “(영화 속에서) 굳이 괴물을 찾는다면 그건 바로 우리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1∼3장으로 구성됐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1장만 보면 미나토는 담임 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의 체벌에 고통받는 피해자이자 친구를 괴롭히는 학교폭력 가해자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호리의 관점인 2장에서는 전혀 다른 스토리가 나와 관객들을 수수께끼에 빠지게 한다. 두 아이에게만 눈길을 맞춘 3장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사카모토가 나에게 3장을 맡기고 싶어서 이 작품을 함께하자고 했구나 생각했다”면서 “그가 던진 공을 잘 받아서 (관객에게) 잘 던져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3장에서 두 소년은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사이로 묘사된다. 둘은 그저 함께하고 싶을 뿐이지만 선생님과 부모, 친구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들을 폭력 속으로 밀어 넣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에서는 정치·사회적인 면에서는 부부, 가족, 사랑의 형태를 매우 좁게 정의한다”면서도 이 영화를 통해 제도를 비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일반적인’, ‘남자다운’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해요. 누군가를 상처 주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이런 말이 소년들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들리는지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 영화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가해와 피해에 대한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두 소년을 연기한 구로카와와 히이라기는 치열한 오디션을 뚫고 배역을 따냈다. 이후 대본 리딩과 리허설에 들어간 이들은 성소수자(LGBTQ)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성교육도 들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2005),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을 통해 걸출한 아역 배우들을 발굴한 감독이다.
그런데도 그는 “‘괴물’ 아역 배우들은 다른 아이들과 아주 달랐다”면서 “캐릭터에 대한 질문도 거의 안 했고, 대본도 한 번 읽고 모두 외웠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아역 연기자였다”고 극찬했다.
1장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끌고 가는 인물인 사오리 역의 안도에 대해서는 “밑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를 가진 배우”라고 했다. 안도는 처음엔 캐스팅 제안을 거절했으나 고레에다 감독의 기나긴 설득 끝에 출연하게 됐다고 한다.
‘괴물’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2018) 이후 고레에다 감독이 5년 만에 연출한 일본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그간 프랑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 한국 영화 ‘브로커'(2022)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났다.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에 돌아와서 영화를 찍었을 때 너무 좋았다면 계속 일본에서 영화를 만들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며 “기회가 생기면 해외로 나가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도전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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