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투표’·’비질란테’…사적인 처벌, 단죄 다룬 드라마들

카타르시스 주면서 부정적 결말로 균형…”미화하거나 찬양하면 안돼”

드라마 ‘국민사형투표’와 ‘비질란테’ 포스터
[SBS·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국민사형투표’와 ‘비질란테’.

잘못을 저지르고도 법의 허점을 이용해 무죄로 풀려나거나 솜방망이 처벌만 받은 이들을 사적으로 단죄하는 드라마가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 드라마들은 범죄자를 응징하는 모습을 보여줘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면서도 사적인 응징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아 균형을 잡았다.

26일 방송가에 따르면 지난 16일 종영한 SBS 목요드라마 ‘국민사형투표’는 가면을 쓴 의문의 인물 ‘개탈’이 범죄자들을 사형에 처하는 과정을 다룬 스릴러다.

개탈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진행해 과반이 찬성하면 사형을 집행한다.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풀려나거나 무죄를 선고받은 이들이 사형 대상에 오른다.

‘국민사형투표’에서 사형당하는 인물들은 현실에서 많은 공분을 샀던 사건의 당사자들을 연상시킨다.

아동성착취물을 유포하고도 1년 6개월만 복역한 배기철, 보험금을 노리고 세 사람의 남편을 차례로 살해했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정해나, 군에서 부하 장교를 성폭행하고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오정호 등이다.

드라마 ‘국민사형투표’
[S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가 지난 8일부터 공개하고 있는 드라마 ‘비질란테’ 역시 경찰대 학생 김지용(남주혁 분)이 범죄자들을 폭행하거나 살해해 심판하는 내용을 다룬 액션 스릴러다.

김지용은 경찰대 교수의 프로파일링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도우면서 범죄자들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고 심판 대상을 정한다.

언론이 이런 김지용의 행적을 두고 ‘비질란테’라는 별명을 붙인다. 언론은 또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죄나 가벼운 처벌에 그친 이들의 이름을 방송에 공개해 비질란테의 활동을 부추긴다.

김지용은 언론이 공개한 범죄자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처벌이 필요할 경우 찾아가 주먹을 휘두른다.

‘비질란테’에서 김지용의 손에 처벌받은 이들도 현실에 있을 법하거나 실제 존재했던 사건의 당사자들을 그대로 데려온 듯한 인상을 준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정덕흥은 끔찍한 아동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난다. 언론이 뒤늦게 비질란테의 처벌을 부추기려 정덕흥의 실명을 공개하자 김지용은 정덕흥을 살해한다.

드라마 ‘비질란테’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민사형투표’와 ‘비질란테’는 각자 형식에 차이가 있으나 법을 대신해 악인을 처벌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개인적인 복수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흔하지만, ‘국민사형투표’와 ‘비질란테’는 다소 결이 다르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가까운 사람을 범죄로 잃은 뒤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범죄자들을 단죄하는 길에 접어든다. 주인공들은 감정을 담은 복수가 아닌 사회 정의의 구현을 내세운다.

‘국민사형투표’는 주 1회만 편성돼 시청률은 다소 낮은 2∼4%대에 머물렀으나 클립 영상이 유튜브에서 300만 넘는 조회수를 넘는 등 입소문을 탔다. ‘비질란테’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가 조사한 드라마 화제성 10위에 올랐다.

이처럼 드라마가 사적인 응징을 구현하는 것은 법적인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거나 허점이 존재한다는 대중의 아쉬움을 반영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질란테’의 크리에이터로 제작에 참여한 문유석 전 부장판사는 최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와 관련한 의견을 밝혔다.

문 전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문제점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시민들이 원하는 정의에 대한 믿음을 충족시키지 못해왔다는 것”이라며 “이번 ‘비질란테’에 참여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드라마들이 드라마가 사적인 단죄를 미화하거나 옹호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금지된 일을 저지른 주인공이 불행해지거나 사회 전반이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담는다.

‘국민사형투표’의 개탈은 종반부에 자신의 행동 때문에 아끼던 사람을 잃은 뒤 후회하고, ‘비질란테’는 가짜 비질란테가 나타나 무분별하게 폭력을 자행하는 등 사적 단죄로 인한 부작용이 등장한다.

문 전 부장판사는 “(‘비질란테’의 원작 웹툰을) 읽어본 결과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시민의 분노를 은유할 뿐 직설법이 아니었다”며 “사적 제재나 복수를 찬양하거나 미화했다면 저는 절대 (제작 참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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