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이야기…이승우 소설집 ‘목소리들’

작가의 열두번째 소설집…2021년 이상문학상 ‘마음의 부력’ 등 8편 수록

소설가 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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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어머니는 통화할 때마다 ‘나’를 형의 이름으로 부른다. 형은 이미 세상을 뜬 지 오래인데 어머니는 자꾸만 나의 목소리를 큰아들과 헷갈린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달라고 재촉하는 어머니에게 의아함을 느낀 나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죽은 형에게 깊은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 주어진 규칙을 어기는 일 없이 성실하게 공부해 공무원이 된 나와 반대로 자유롭고 예술가적인 방랑 기질이 다분했던 형은 가정도 꾸리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어머니와 내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81년 등단한 이래 40년 넘게 한국 문단에서 독보적 위상을 다져온 이승우 작가의 신작 소설집 ‘목소리들’에 수록된 ‘마음의 부력’의 이야기다. 2021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단편을 통해 작가는 상실과 부채 의식, 죄책감이라는 윤리적 주제를 특유의 정밀하고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소설집에는 이 작품처럼 가족을 잃거나 관계에 균열이 생겨 갈등과 위기를 겪으며 삶의 방향성을 잃어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아들이 각각 독백의 형식으로 속마음을 토로하는 표제작도 그렇다. 막내아들의 죽음 이후 두 화자 모두 죄책감과 슬픔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엄마는 막내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남편과 남은 자식에게 돌리고, 아들은 엄마의 그런 행동에 대해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 남들을 탓하면서, 남들에게 돌릴 수 없는 책임을 물으면서 자기를 지목하고 있는 거”라고 받아친다.

단편 ‘물 위의 잠’에도 ‘마음의 부력’처럼 주인공과 형의 목소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타지에서 의문사한 형 영식을 자꾸 찾는 어머니를 만나러 간 영수는 병세가 점점 나빠지는 어머니 앞에서 형의 기억을 떠올린다.

작가는 열두번째 소설집인 이 단편집에서 가까운 이들을 잃고 나서 생긴 관계의 균열과 인물들 각각의 가슴에 새겨진 트라우마를 섬세하고도 정확한 언어로 포착해 냈다.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질문을 천천히 제시한 뒤 그에 대한 존재론적 대답을 인물들이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특유의 논리정연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에 담겼다.

책의 두께는 얇아도, 수록된 여덟 편의 작품에선 작가의 오랜 통찰과 깊은 공력이 느껴진다.

문학과지성사.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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