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살인범 쫓는 엄마 역…”성소수자 아들 둔 설정에 끌려”

[티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이승미 인턴기자 = “전에는 인물이 한 가지 성격으로 나왔다면 이젠 차츰 입체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엄마를 연기해도 똑같은 엄마가 아니고 여러 모습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게 되는 것이죠.”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에서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직접 쫓는 엄마 황순규 역할을 맡은 배우 이정은은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10부작인 ‘운수 오진 날’은 티빙에서 지난달 24일 파트1(1∼6회), 이달 8일 파트2(7∼10회)가 공개됐다. 이 드라마는 3주 연속 티빙 유료가입 기여자 수 1위를 달리고 있다. tvN에선 이달 19일까지 매주 월·화요일 오후 10시 30분 방송된다.
이정은은 “여성 캐릭터가 고정돼 있던 모습에서 점차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며 “배우로서 그런 역할을 흡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야 동료들과 후배 배우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그 (넓어진) 기회를 다른 친구들도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선배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입체적인 모습들을 연기할 배우를 감독들이 선택해주고, 시청자들이 찾아주는 건 배우들에게 기회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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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의 말처럼 ‘운수 오진 날’ 속 황순규는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혈혈단신으로 연쇄살인범을 쫓는 집요한 추격자의 모습을 두루 갖춘 복합적이고 능동적인 인물이다.
순규는 아들 남윤호(이강지 분)가 돌연 숨진 것을 발견하고 윤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친다. 윤호가 숨지기 전 의문의 남성이 주변을 맴도는 걸 확인한 순규는 추적 끝에 그 남성이 금혁수임을 알게 된다.
경찰이 윤호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짓고 수사하지 않으려 하자, 순규는 혁수의 집에 몰래 들어가 윤호의 사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뒤를 쫓는다.
혁수는 윤호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이용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밝혀지고, 경찰도 뒤늦게 혁수를 살인범으로 확신하고 수사에 나선다.
이정은은 “성소수자 아들을 둔 어머니라는 설정이 매력 있었다”며 “제가 형평이나 공평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성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작품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순규가) 소외되기 쉬운 사람이 입는 피해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란 생각에 끌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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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규는 집요하게 혁수를 추적하면서도 중간중간 어설픈 모습을 보인다. 혁수 집의 담장을 넘을 때는 뒤뚱거리며 담벼락 너머로 떨어져 신음을 내뱉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정은은 “사실 처음 촬영할 때 제가 담을 너무 쉽게 넘었다”며 “감독님이 ‘그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끈질기게 노력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순규는 혁수의 뒤를 쫓던 중 중상을 입고 쓰러진 젊은 남성을 발견한다. 혁수의 손에 의해 다친 남성인데, 순규는 경찰에 신고하고 남성의 손을 잡은 채 “괜찮을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이 장면은 드라마 내내 혁수의 흔적을 발견하면 급히 달려가는 순규가 거의 유일하게 시간을 지체하는 대목이다.
이정은은 “저는 이 장면에서 ‘순규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독님은 ‘어머니에게는 어떤 아들이든 자기 또래 아이들에게 갖는 감성이 있다’고 했다”고 떠올렸다.
‘운수 오진 날’을 비롯해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기혼자 또는 어머니를 연기한 이정은은 실제로는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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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은 1991년부터 연극 무대에 오른 베테랑 연기자다. 지난 2019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비밀을 가진 가사도우미를 연기해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2019), ‘로스쿨'(2021), ‘우리들의 블루스'(2022) 등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는 넷플릭스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자애로우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수간호사를 연기해 감동을 줬다. 정신병을 앓는 동생을 돌보다가 간호사가 된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이정은은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을 때 가장 뿌듯한지 묻자 “‘나도 그 마음 알아요’라는 말을 듣는 게 가장 좋다”고 답했다.
“많은 관객과 시청자가 봐주는 것보다도 제가 연기한 인물의 감정에 사람들이 공감해주는 것, 그게 배우에게는 최고의 칭찬인 것 같아요.”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