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김대건 조각상 만든 한진섭 조각가 “기적같은 일”
가나아트센터에서 제작과정 소개하는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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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한진섭 조각가가 14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조각상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 2023.12.15. zitrone@yna.co.kr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가톨릭 신자가 된 것, 이탈리아 유학을 한 것, 돌 작업을 하게 된 것, 사실적인 조각을 연습하게 한 것, 이 모든 것이 김대건 신부님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성령이 저를 훈련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대건 조각상 작업은) 그렇게밖에는 해석이 안 돼요.”
지난 9월 5일, 세계 가톨릭의 중심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한국 최초 사제인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조각상이 들어섰다. 높이 3.77m에 이르는 이 조각상은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아시아 성인 성상이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의 성상으로 주목받았다.
이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 한진섭(67)은 조각상 제작을 의뢰받고 작업해 설치하기까지 과정에 대해 연신 “기적 같은 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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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한진섭 작가가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위해 교황청에 제안했던 네 가지 안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중 두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형태의 안(오른쪽 위)이 최종 선정됐다. 2023.12.15.zitrone@yna.co.kr
15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시작하는 개인전을 앞두고 전시장에서 만난 한 작가는 김대건 신부 조각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되기까지는 신기할 정도로 여러 기적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조각상이 설치된 곳은 대성전 오른쪽 외벽의 벽감으로, 대성전이 지어진 뒤 500여년간 줄곧 비어있던 자리다. 이런 곳에 한국인 조각가가 만든 한국인 조각상이 놓이기까지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부임한 유흥식 추기경이 교황청을 설득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많은 한국 조각가 중에 한 작가가 선정된 데도 여러 상황이 신기하게 들어맞았다. 가톨릭 신자여야 하고 이탈리아의 유명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의 대리석으로 작업해야 하니 이탈리아에서 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등을 고려한 끝에 교황청은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던 한 작가에게 연락했다.
“저는 돌 작업을 48년간 했지만 사실적인 조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신기하게도 2년 반 전부터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과 김대건 신부 조각상, 정하상 바오로 성상을 만들며 사실적인 조각을 했죠. 그때 바로 바티칸에서 연락이 와서 마침 제출할 자료가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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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한진섭 개인전에 전시된 김대건 신부 조각상.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된 것과 같은 형태의 조각상을 60cm 크기로 새로 만든 작품이다. 앞에 놓인 대리석은 실제 조각상에 사용된 이탈리아 카라라 대리석. [가나아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신기한 일은 계속 이어졌다. 작품 제작이 결정되고 나서는 돌을 찾는 게 큰일이었다. 4m 가까운 조각상을 만들 큰 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금(크랙)이나 무늬도 없어야 했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알게 된 지인들이 발 벗고 나서 함께 찾은 돌에서는 다행히 작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금이나 무늬도 발견되지 않았다. 작가는 “‘돌 속은 사람 마음보다 더 모른다’라고들 하는데 금이나 무늬가 발견되지 않은 것 또한 기적”이라고 말했다.
‘기적’은 조각상을 벽감에 설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됐다. 4m에 가까운 대형 조각상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뒤 거짓말처럼 한 번에 설치가 완료됐다.
“조각상이 23cm 정도 들어가야 하는 데 한 번에 들어갔죠. 너무 밀어 넣으면 빼지도 못하는데 한 번에 수평도 딱 맞았고요. 마치 김대건 신부님이 ‘여긴 내 자리야’ 하며 뒷걸음질해서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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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현지시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 축복식이 16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의 설치 장소 인근에서 거행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성전 조각상 작업은 작가로는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담이기도 했다. 작업 과정을 설명하며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여러 차례 눈가가 붉어졌던 작가는 “김대건 신부가 옆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김대건 신부에 관해 공부하다 보니 굉장히 담대하고 용기가 있으면서도 포용할 줄 아는 겸손한 분이었어요. 이런 점을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려웠고 포기하고 싶었죠, 이 조각상의 중요성에 어깨가 무거워 잠도 잘 못 잤죠. 다행히 제 옆에 김대건 신부가 계셔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싶어요.”
내년 1월14일까지 계속되는 개인전에서는 김대건 신부 조각상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과 사진, 모형, 최종안이 확정되기 전 바티칸에 제출했던 네 가지 구상안,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바티칸에 설치한 것과 같은 형태로 새로 만든 60cm 김대건 신부상 등을 볼 수 있다. 작가가 그동안 작업해 온 성상(聖像) 조각 등도 함께 전시된다.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