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암투병, 성차별…”산산조각 날 때마다 별을 바라봤다”

여성 과학자가 쓴 회고록…신간 ‘젊은 여성 과학자의 초상’

밤하늘 떨어지는 별똥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공립학교에선 똘똘하단 소리를 들으며 컸다. 그러나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진학해 보니 온통 괴물들만 모여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온 동기들과 말을 섞어보니, 감히 자신이 끼어들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을 피하자.”

그녀, 린디 엘킨스탠턴은 미국 시골의 한 공립학교를 졸업했다. 세인트폴스쿨 등 명문 사립고교 출신들이 즐비한 곳에서 학업적·문화적 충격을 입학 첫해부터 느꼈다. 미적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괴물들과 경쟁해 물리학을 공부할 순 없었다. 그녀는 지구대기행성과학부를 선택했다. 1980년대 초반, MIT에서 여학생은 20% 남짓에 불과할 때였다.

앨킨스탠턴이 쓴 ‘젊은 여성 과학자의 초상'(흐름출판)은 역경을 딛고 과학자로 성공하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이다.

린디 엘킨스탠턴
[UPI=연합뉴스]

저자는 강고한 남성 중심 사회인 과학계에서 유리천장을 뛰어넘은 여성 과학자다. 그녀는 2023년 나사 디스커버리 프로젝트 중 가장 치열했던 프시케(소행성)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프시케 프로젝트는 소행성 탐사를 뼈대로 한 기획이다. 소행성은 행성이 생기는 과정에서 나온 잔해들이 일부 뭉쳐 이뤄진 천체로, 태양계 초기 형성과정에서 만들어진 후 변화를 겪지 않아 이 시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행성을 철저히 조사한다면 지구 탄생의 비밀도 유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앨킨스탠턴은 프시케 프로젝트를 이끌며 2023년 과학자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책은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프시케 프로젝트까지,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소행성 프시케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녀는 과학계에서 성공한 여성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걸어온 길이 장밋빛만으로 채색됐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를 키운 건 8할이 역경이었다.

이는 책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젊은 여성 과학자의 초상'(원제: A Portrait of the Scientist as a Young Woman)은 제임스 조이스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에서 따왔음이 분명하다. 조이스가 소설에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고난에 초점을 맞췄듯, 저자도 회고록에서 삶을 가로막은 역경에 주안점을 둔다.

책 표지 이미지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유년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몰아넣은 성폭력, 엄마의 성마름과 우울증, 학교와 직장에서 벌어진 빈번한 성차별, 우상 같던 오빠의 돌연한 죽음, 이혼, 그리고 암 투병 등 생애주기별로 찾아온 고난을 그녀는 모조리 견뎌냈다.

그 역경의 시간을 위로한 건 과학이었다. 저자는 우주를 연구하면서 “우리가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긴 시간은 그 어떤 실패도 ‘작은 것’으로 만들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지질학과 방대한 지질학적 시간, 행성의 성장 과정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취약성과 실패를 덜 위험한 것처럼, 그리고 결국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광대한 시간은 내 마음을 크게 위로한다.”

김아림 옮김. 392쪽.

몬스터 갤럭시 ‘코스모스-아즈텍-1’
[일본국립천문대 제공]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