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여성, 자전거, 제국주의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고무는 근대를 상징하는 자원 중 하나다.

신발이나 의복부터 기계 및 산업 소재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상품 생산에 크게 기여했다.

고무는 커피, 사탕수수와 함께 제국주의를 상징한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들 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원주민 희생이 따랐는지 모른다.

생활 변화에 주목해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고무가 일으킨 ‘혁명’ 중 하나가 자전거의 등장이었다. 고무로 만든 타이어 개발로 자전거가 급속히 상품화된 것이다.

1890년대 유럽에서부터 상용화된 자전거는 여행의 낭만, 간편한 이동은 물론 패션 변화에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파리 교외 주택가에 줄지어 선 자전거들

‘자전거를 탄 모습’으로 아버지 모습이 먼저 떠오르지만, 당시 유럽에서 자전거가 남긴 풍속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다. 자전거는 당시 여성 권익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사진으로 남은 것도 많지만, 한참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이 있다.

‘불로뉴 숲의 자전거 별장’
파리 카르나 발레 미술관 소장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장 베로(1849~1935)가 그린 ‘불로뉴 숲의 자전거 별장'(1900년께)이다.

숲속 카페를 겸한 별장 같은 곳에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특히 바지를 입은 여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교계와 일상에서 피할 수 없었던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어 던진 모습이다. 매우 자유로워 보인다.

여자들의 밝은 표정은 자전거와 도시를 벗어난 상쾌함에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복장이 주는 편안함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복장은 당시 파리 유행을 선도하는 최신 패션이었다고 한다.

유럽 19세기 말은 ‘좋았던 시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벨 에포크’로 불린다. 파리만 따지자면, 보불전쟁이 끝나고(1871)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1914)까지다.

이 시대 파리 문화를 꾸준하게 그린 화가 중 한 명이 장 베로였다. 베로의 다른 대표작, ‘무도회’를 보면 파티를 즐기는 파리 부르주아들 모임을 영화 장면처럼 그렸다.

그림 속 여성은 위 그림과는 반대로 전형적인 파티용 드레스를 입었다. 자전거를 타며 여가를 즐기던 여성들과 같은 계층이었다.

‘무도회’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그런 유행과 문화를 일컫는 용어로 ‘댄디즘’이 있다. ‘세련된 차림새와 예의 바른 몸가짐’이란 뜻으로, 산업혁명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상류층 부르주아 문화를 대변하는 단어다.

이들 계층의 또 다른 상징이기도 했던 자전거와 넉넉한 여성 바지, 그리고 예술과 정치를 논하던 ‘카페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리그’ 표상이었다.

이 글 처음에 언급한 대로 이런 향유와 유희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얻은 열매였다.

자전거를 타며 미풍을 맞는 상쾌함과 커피에 설탕을 타서 마시던 한 잔의 풍미 뒤엔 목숨을 걸며 원재료를 수확하던 원주민의 피와 땀과 ‘해체’가 있었다. 가족과 부족의 해체, 자유의 해체.

약육강식 시대였던 벨 에포크 바탕은 ‘에포크 누아르'(검은 시대)였던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하고픈 사실이 있다. 프랑스 여성들 실제 권익은 이 그림처럼 그리 앞서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에서 권리의 상징은 선거권이다. 프랑스에서 여성들이 선거권을 인정받는 건 반세기가 더 지나야 했다. 1944년이었다.

doh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