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인간세계에 개들이 온기를 더한다…영화 ‘도그맨’

뤼크 베송 감독 신작…눈길 사로잡는 개들의 연기

‘도그맨’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뤼크 베송의 신작 ‘도그맨’은 처음엔 미스터리 스릴러의 느낌이 강하다.

주인공 더글라스(케일럽 랜드리 존스 분)가 발산하는 강렬한 인상과 음울한 분위기 때문이다.

더글라스는 미국 뉴저지주의 한 도심에서 긴 머리 가발에 짙은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은 채 트럭을 몰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그의 차에선 한눈에 몇 마리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개가 발견된다.

영화는 그가 사이코패스 범죄자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며 출발한다. 그러나 전개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따뜻한 감성이 짙어지고, 스릴러와 드라마,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종합한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에 온기를 더하는 존재는 개들이다. 극 시작과 함께 스크린에 뜨는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는 문장은 개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예고한다.

‘도그맨’은 경찰에 붙잡힌 더글라스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던 더글라스는 개 사육장에 가둬져 개들과 함께 자란다. 그러면서 개들과 남다른 유대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늑대 소년처럼 거친 야수성을 가진 것도 아니다. 사육장에서 구출돼 보호 시설에 맡겨졌을 때 연극에 심취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세상만사와 인간 본성에 관한 지혜를 얻게 된다. 그의 말은 때때로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를 연상케 할 만큼 의미심장하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휠체어 없이는 거동할 수 없는 그에게 개들은 손과 발이 돼준다. 잘 훈련받은 데다 두려움을 모르는 개들은 더글라스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수행하고, 그는 마치 영화 ‘대부'(1973)의 돈 콜레오네처럼 이웃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된다.

‘도그맨’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영화는 사회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사람에게 친구가 돼준 개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공감과 우정을 그려낸다. 개들의 위로로 삶의 힘을 얻은 더글라스는 사람에 대한 사랑에도 눈을 뜨게 된다.

개들의 연기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구의 괴한들이 귀엽게 생긴 개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해도 웃음을 자아낸다.

촬영에 참여한 개들이 무려 115마리에 달한다. 촬영 현장에는 스물다섯 명이나 되는 훈련사도 함께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잘 훈련받은 개들을 캐스팅하는 데만 서너 달이 걸렸다고 한다.

개들 속에서 자랐으면서도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지혜를 갖추고, 자기를 여성으로 꾸미기를 즐기는 더글라스의 캐릭터 설정은 다소 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니트람'(2021)으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빼어난 연기력으로 이를 소화해낸다.

‘도그맨’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베송 감독은 한 남성이 아들을 4년 동안 개와 함께 우리에 가둔 사건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낸 그 사람이 선택의 기회를 맞아 테러리스트가 됐을지, 마더 테레사(와 같은 성자)가 됐을지 궁금했다”며 상상의 단면을 내비치기도 했다.

‘도그맨’은 제80회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오픈 시네마 부문에 초청돼 베송 감독도 부산을 방문했다.

24일 개봉. 115분. 15세 관람가.

‘도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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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