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덕희’ 라미란 “맞아도 고개 안 숙이는 덕희, 그저 좋았죠”

중년 여성이 보이스피싱 보스 잡는 이야기…”평범한 캐릭터, 내가 적임자”

배우 라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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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슈퍼맨도, 원더우먼도 아니다. 그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대한민국의 중년 여성이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시민덕희’는 그렇게 지극히 평범한 사람 덕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덕희가 중국으로 건너가 범죄 조직의 보스를 잡는다는 게 이 영화의 줄거리다.

덕희 역을 맡은 배우 라미란은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데 자기만 한 사람이 또 있겠냐고 했다.

“덕희는 너무 평범하고 정말 이웃에 있을 법한 인물이잖아요. 제가 가장 비슷하지 않나요? 다른 분들(배우들)은 너무 예쁘잖아요.”

1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라미란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관객들도 나를 평범함의 대명사처럼 봐주시는 것 같다”며 “내가 실제로도 그렇다(평범하다)”고 말했다.

영화 속 덕희가 평범한 사람이긴 하지만, 비범한 일을 해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가진 자존감을 지킨 결과로 봐야지, 남다른 시민의식 같은 걸 발휘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게 라미란의 설명이다.

그는 “덕희가 영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영화는 히어로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자존(自尊)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시민덕희’에는 덕희가 보이스피싱 조직 보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장면이 나온다. 라미란은 온몸을 던진 듯 연기한다.

덕희는 싸움도 할 줄 몰라 얼굴이 엉망이 될 만큼 맞지만,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약자가 자기를 지키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강자가 약자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도 이런 때일 것이다.

“내가 맞아도 고개를 숙일 순 없었죠. 내가 왜? 그렇게 덕희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밖으로 나오잖아요. 전 그런 덕희가 그저 좋았어요.”

그렇게 ‘시민덕희’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기댈 곳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시민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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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란은 “이 영화는 덕희가 자존감을 지키며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성장 이야기로 생각되기도 한다”며 “내가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도 이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경기도 화성의 한 중년 여성 김모 씨가 2016년 보이스피싱 조직 내부자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경찰에 제공해 조직 총책을 붙잡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실화를 토대로 했다.

김 씨는 최근 ‘시민덕희’ 시사회에 참석했고, 라미란도 만났다고 한다. 라미란은 김 씨에 대해 “정말 강단 있고 용감한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영화 속 덕희는 경찰에 제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이스피싱 조직의 근거지인 중국 칭다오로 건너간다. 세탁 공장 동료 봉림(염혜란)과 숙자(장윤주), 봉림의 동생 애림(안은진)이 함께한다.

라미란은 “내가 덕희라면 경찰에 제보까지는 해도 다음 단계(중국 입국)까지는 못 갔을 것 같다”면서도 “인생의 어떤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면 나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라고 했다.

‘시민덕희’는 라미란을 중심으로 한 여성 4인조의 앙상블도 볼거리다. 특히 라미란과 한 살 적은 염혜란의 ‘티키타카’가 돋보인다.

라미란은 “염혜란 씨는 나와 성격도 비슷하다.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려 ‘예능 울렁증’이 있는데, 연기할 땐 거침이 없다”며 “언젠가는 ‘쌍란’으로 뭔가 해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평범한 캐릭터에 자기가 적임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틀에 박힌 배우가 될까 봐 항상 두려워한다.

‘정직한 후보’ 시리즈에서 능글맞은 정치인을 연기했던 그는 지난해 드라마 ‘나쁜 엄마’에선 모질게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 등장했다.

“뭐라도 달라 보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누구든 항상 새로워지려고 노력하잖아요. 배우는 더욱 그래야죠.”

‘시민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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