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로 살펴본 우주관의 진화…신간 ‘코스미그래픽’

중세 백과사전 ‘꽃의 책’에 실린 우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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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인류는 거대하고 입체적인 우주를 오래전부터 작고 평면적인 그림으로 압축해 형상화하거나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2세기 중엽 그리스 천문학자이며 지리학자인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의 우주관을 계승해 확립한 천동설은 여러 이미지로 재생산됐다.

1211년 세상에 나온 백과사전 ‘꽃의 책’에는 중세 인류가 생각한 우주의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이 실렸다. 프랑스 남부 생토메르 성당 주교 랑베르는 이 책에서 지구를 가운데에 놓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태양의 위치를 지구 주변에 9개로 표시했다.

천동설은 폴란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표해 태양 중심설을 내놓으면서 도전에 직면한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역시 그림으로 우주에 관한 새로운 사상을 소개한다. 인류의 우주 탐구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그림은 몇 개의 선과 글씨로 이뤄진 간단한 도안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의미하는 ‘sol’이 적힌 둥근 물체가 가운데 있고 주변에 동심원을 그려 여러 천체가 태양 둘레를 도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책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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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천문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200만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우주에 관한 패러다임을 즉시 바꾸지는 못했다. 당시 인류는 적도를 기준으로 시속 1천600㎞가 넘는 속도로 회전하는 지구 위에 인간이 그대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수긍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지지하는 화려한 그림이 등장한다. 1660년 안드레아스 셀라리우스가 쓴 ‘대우주의 조화’에는 태양이 지배하는 우주의 모습이 등장한다. 여기서 태양은 눈·코·입이 있는 인간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고 붉은빛을 사방으로 내뿜고 있다.

‘대우주의 조화’에 실린 우주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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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벤슨은 최근 번역 출간된 신간 ‘코스미그래픽'(롤러코스터)에서 드넓은 우주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시행착오를 여러 이미지와 함께 소개한다.

밤하늘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이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 천체인 달에 관한 지식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달의 모양 변화에 많은 관심을 지녔다는 것은 여러 자료로 확인된다. 기원전 2000∼160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인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가 대표적이다. 지름 약 30㎝의 원반형으로 된 이 디스크에는 보름달 혹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둥근 금박과 초승달로 보이는 금박이 입혀져 있다.

인류가 달 표면의 모습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공학자이며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던 제임스 네이즈미스와 영국 천문학자 제임스 카펜터가 1874년 출간한 ‘달: 행성, 세계, 위성인 곳’을 보면 달의 표면이 극단적으로 뾰족하고 험준한 산맥으로 형상화돼 있다. 이는 달에 대기가 없기 때문에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극명하게 구분돼 보이면서 생긴 착시로 인한 오해였다고 한다. 실제 달 표면은 40억년이 넘는 기간 동안 쏟아진 운석으로 매끈한 것으로 조사됐다.

‘달: 행성, 세계, 위성인 곳’에 실린 달 표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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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류의 우주 지식은 급속도로 확장한다.

20세기 중반이 되면서 우주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은하로 채워져 있고 지구와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는 수십억개의 은하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견해가 널리 수용되게 됐다. 플라톤에서부터 따지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관념에서 탈피하는 데 약 2천년이 걸렸는데 이후 수백 년 만에 태양은 물론 태양이 속한 은하계조차 전체 우주와 비교하면 극히 일부라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

헤이든 천체투영관쇼 ‘어두운 우주’에 등장하는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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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과학을 예술, 철학, 신학 등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있었고 우주에 관한 지식도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됐다. 최근 100여년 사이에 과학은 앞선 시대보다 훨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하지만 슈퍼컴퓨터와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생성한 우주 이미지는 경계를 허물고 다시 예술적 감성을 자극한다.

실제로 책에 실린 나선은하의 형성 과정 시뮬레이션, 별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우주의 구조를 거시적으로 보여주는 천체 투영관 쇼, 광활한 시공간에서 중력의 영향으로 은하들이 흘러가는 과정을 표현한 그림 등 첨단 기술로 구현한 이미지는 예술작품 못지않게 화려하며 보는 이의 상상력이 샘솟게 한다.

지웅배 옮김. 352쪽.

중력의 영향으로 은하들이 흘러가는 과정을 묘사한 슈퍼컴퓨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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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