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운동권의 후일담 다룬 대표작으로 인기…향년 65세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1980년대 운동권 세대의 후일담을 다룬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필명을 널리 알린 소설가 박일문 씨가 최근 별세했다.
21일 문학계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의 자택에서 작고했다. 향년 65세.
1959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그는 영남대 법대를 졸업했다. 20대에 불교 승려로 잠시 출가했다 환속한 고인은 1992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왕비를 아십니까?’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같은 해 작가의 개인사를 녹여낸 장편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민음사가 주관하는 제16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고인의 대표작인 이 소설은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한국 사회의 암울한 상황에서 20대를 지낸 주인공이 30대에 이르러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나’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해고와 투옥, 출판·저술 활동, 출가, 대학원 진학과 중도 포기 등을 경험하는데, 그 과정에서 ‘라라’와 ‘디디’라는 두 여성을 만난다. 라라는 ‘나’에게 영향을 받아 운동권에 뛰어들지만 노동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디디는 ‘나’를 문학과 글쓰기로 이끈다.
이 소설 제목은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그대로 따왔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잠시 일기도 했다. 그러나 표절 시비와 별개로 90년대 초반의 시대적 상황과 청년층의 방황을 생생히 포착한 문제작으로 떠올라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같은 제목의 TV 드라마가 이병헌 주연으로 1993년 KBS에서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고인은 이 작품 외에 시집 ‘병영일기’, ‘함께 보낸 날들’, 장편소설 ‘아직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장미와 자는 법’, ‘달은 도둑놈이다’, ‘적멸’ 등을 펴냈으나 대표작만큼의 명성은 누리지 못했다.
생전에 홀로 생활했던 고인의 장례는 소수의 친지만 모인 가운데 최근 수목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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