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희·김영옥·박근형 노련한 연기…남해 풍경도 볼거리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은 편안히 꽃길만 걷다가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에도 고통에 발목을 잡힌다.
김용균 감독의 신작 ‘소풍’은 만년의 삶을 옥죄는 온갖 걱정거리로부터 벗어나 10대 소녀 시절로 돌아가길 꿈꾸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아들 부부와 살아가는 70대 할머니 은심(나문희 분)은 파킨슨병에 걸려 손 떨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데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엄마가 보이곤 해 마음이 어수선하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들 해웅(류승수)이다. 사업이 잘못돼 파산 지경에 처한 해웅은 은심의 집과 보험금까지 넘본다.
그러던 중 은심의 고향 친구이자 사돈지간이기도 한 금순(김영옥)이 찾아오고, 은심은 금순에게 불쑥 “같이 고향에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둘은 경남 남해 바닷가 마을에 내려가 학창 시절 친구 태호(박근형)를 만나면서 옛 추억에 빠져든다.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도 삶의 고통은 있다. 이곳에선 리조트 건설 반대운동이 한창이고, 주민들 간에도 반목한다. 해웅의 사업 문제는 여기서도 은심의 마음을 떠나질 않는다.
이 영화에서 은심과 금순이 어느 화창한 날 떠나는 소풍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마지막 몸부림처럼 보인다.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두 사람을 보는 관객의 마음엔 자연스럽게 할머니, 할아버지나 부모님이 떠오를 법하다.
은심과 금순의 옛 추억은 해남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진다. 이것과 대조를 이루는 건 갈수록 꼬여가는 해웅의 이야기와 리조트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다.
베테랑 연기자인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다만 이들의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는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이들의 자연스러운 말투를 살렸더라면 맛깔스러운 말이 오가면서 연기가 더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영옥은 지난 23일 시사회에서 “두 노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부모님과 같은 주변의)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다가 가실 수 있도록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첫 장편 ‘와니와 준하'(2001)에서 청춘의 사랑과 갈등을 조명했던 김 감독은 ‘소풍’에선 노년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본다. 그는 몇 년 전 어머니를 떠나보낸 경험을 이 영화에 녹여냈다고 한다.
배경음악에는 가수 임영웅의 자작곡 ‘모래 알갱이’가 포함됐다. 그의 소속사에서 ‘소풍’의 주연배우 세 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배경음악으로 쓰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소풍’은 윤여정·유해진 주연의 ‘도그데이즈’, 조진웅·김희애 주연의 ‘데드맨’과 설 연휴 극장가에서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2월 7일 개봉. 113분. 12세 관람가.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