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지아마티 감동적 연기…미국 아카데미 5개 부문 노미네이트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바튼 아카데미’란 이름의 미국 명문 사립학교 역사 교사 폴(폴 지아마티 분)은 올곧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몰라도 매력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게 있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도통 듣지 않는다. 논쟁이라도 벌어지면 고대 로마 격언을 라틴어 그대로 인용하며 독설을 퍼붓는다.
성적을 매길 땐 까다롭기 그지없고, 방학을 앞둔 마지막 수업에서도 진도를 나가려고 한다. 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없는 선생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신작 ‘바튼 아카데미’는 1970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학생과 교사들이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려고 다 떠나 텅 빈 바튼 아카데미에 외로이 남게 된 폴과 학생 앵거스(도미닉 세사), 주방장 메리(더바인 조이 랜돌프)의 이야기다.
앵거스와 메리도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하긴 어렵다. 앵거스는 학업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지만, 사교적이지 못해 별것 아닌 일로 툭하면 동료들과 싸움을 벌이는 문제아다. 메리는 업무엔 철두철미해도 무뚝뚝해 말 한마디 걸기도 쉽지 않다.
폴과 앵거스, 메리는 각자 마음속 상처가 있다. 이들이 어쩌다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함께 보내면서 서로의 고통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영화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휴먼 드라마지만, 코미디의 요소가 강하다.
어딘가 성격적 결함이 있어 보이는 사람 셋이 텅 빈 학교에서 연휴를 보내게 된 이상 웃긴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들이 툭툭 내뱉는 말은 재치로 넘쳐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지아마티의 연기는 감동을 준다. 그가 연기한 폴은 젊은 시절 하버드대를 다니며 큰 꿈을 품었지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중년의 나이엔 회한에 젖어 사는 인물이다.
폴이 우연히 마주친 대학 동창에게 자기 신상에 관해 거짓말을 늘어놓는 걸 보면 그는 아직 자기와의 화해에 도달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폴은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못 이룬 꿈에 대한 미련 같은 걸 넘어선다.
지아마티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2005)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바 있다. 두 사람은 ‘바튼 아카데미’에서 약 20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랜돌프는 자신의 모든 것과 같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중년 여성 메리를 연기해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세사는 이 영화의 촬영 장소인 학교의 졸업반 학생으로, 오디션을 거쳐 앵거스 역을 맡게 된 신예 배우다.
‘바튼 아카데미’는 등장인물의 의상과 거리의 모습 등을 통해 1970년대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한겨울 난방이 제대로 안 되는 텅 빈 학교의 휑한 느낌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관객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제작진은 영상의 채도를 낮춰 옛 영화의 질감을 살려냈고, 제작사 로고도 그 시절의 것을 썼다.
‘바튼 아카데미’는 지난달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지아마티)과 여우조연상(랜돌프)을 받았다.
다음 달 열리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작품상과 각본상, 편집상까지 포함해 다섯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21일 개봉. 133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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